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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3) 1. 이별노래, 이규보의 임진강 ③고려 오백년의 기다림과 이별. 천수원

입력 : 2019-10-28 05:01:33
수정 : 2019-11-18 06:30:16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3)

1. 이별노래, 이규보의 임진강 고려 오백년의 기다림과 이별. 천수원

 

임진강이 이별의 장소가 된 것은 고려도성 개성의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남쪽에서 개성을 드나드는 모든 이가 이 강을 건너야 했다. 여느 강보다 많은 사람들이 임진강을 건넜을 것이다. 강은 길이 멈추는 곳이어서 따라 나온 이들은 여기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단연 임진강 최초의 시작품이라고 할 김부식의 시에도 이별의 감정이 담겨 있다.

 

▲천수원이 있던 자리
 

가을바람 산들산들 물은 출렁출렁/ 장교에 머리 돌리니 생각이 아득해라/ 슬프다, 고운사람 천리를 격했는데./ 강변의 향기로운 풀 누굴 위해 향기롭노.(김부식. 임진유감)”

 

무엇보다 임진강 북쪽 어귀에는 천수원이 있었다. 천수원은 고려 오백년 동안 손을 맞고 보내는 영빈송객의 장소였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천수원에서 이루어졌다. 외국사신을 맞고 보내는 잔치도 천수원에서 했다. 이때는 채색으로 화려하게 꾸민 거대한 장막을 걸쳐 놓고 놀이와 가무를 베풀었다. 가무에 동원된 인원이 1천명이 넘는 엄청난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천수원에서는 이런 행사가 끊이지 않았다. 국가적인 행사와 상관없이 천수원에는 뭇 사람들의 눈물이 뿌려졌다. 손을 보내지 않을 때조차 천수원을 지날 때는 눈물이 났다.

 

삼월이라 늦은 봄/ 곳곳마다 그 이별 슬프구나/ 남북으로 갈리니 또 남북이요/ 이별하고 나니 또 이별일세/ 떨어진 꽃 차마 못 보겠어라/ 푸른 풀 그 한 가이 없네/ 해마다 저 버들 그다지도 꺾었건마는/ 수많은 가지 또 다시 드리웠네/ 물어보자 가지 위 저 새들아/ 이별곡 몇 번이나 들었던가.(이규보. 천수사 문밖에서 읊다부분)”

 

천수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났던가? 문득 천수원을 지나던 이규보는 송별이 없음에도 이별을 노래한다. 이곳을 지나며 이별을 노래하지 않으면 시인이 아니었다. 흐르고 흐르던 눈물은 최사립의 대인으로 모아졌다.

 

천수문 앞에 버들개지 나는데/ 술 한 병 들고서 그대 오길 기다리네/ 해 지는 긴긴 길목을 뚫어지게 보아도/ 오가는 사람 가까이 오면 그대 아니네.”

 

대인은 단박에 천수원을 대표하는 시가 됐다. 이전의 시인들은 천수원을 지나며 이별을 노래했지만 대인이후 시인들은 시에 이끌려 천수원에 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나간 모든 이별을 떠올렸다. 천수원의 눈물은 차고 넘쳐 임진강으로 흘렀다. 눈물이 마르지 않은 사람들은 임진강까지 나와 마지막 눈물을 뿌렸다. 그렇게 임진강은 이별의 강, 눈물의 강이 됐다. 이규보의 남쪽행과 이별도 언제나 이 길에서 이뤄졌다.

처음 동문을 나올 때도 오히려 슬펐으니 강을 건느매 더욱 연연해짐 어쩔 수 없네.”

개성에서 동문을 나서면 천수원이고 천수원을 지나면 임진나루다. 고려와 조선시대 내내 임진강은 이별의 강이었다. 강에 떨어진 눈물이 여울에 부서졌고 그것이 모여 바다로 흘렀다. 길이 막히고 이별도 할 수 없게 된 지금, 임진강은 눈물마저 말라버렸다.

 이재석 / DMZ생태평화학교 교장, [임진강 기행], [걸어서만나는 임진강]저자

 

#1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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